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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현    2011-06-14 03:00:39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가 확실한 사람이 영분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가 확실한 사람이

영분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있는걸 있는 그대로 보는게 영분별입니다.

A타입은 A타입이구나, B타입은 B타입이구나 그대로보는게 영분별입니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 A타입은 A타입, B타입은 B타입!

이것이 확실한 사람이 영분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영분별을 못하도록 하는 문화를 인식해야 합니다.

아니어도 예하거나, 아니어도 외면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말을 교회에 적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은혜를 구하는 것에 열심이 덜한 성도가 있다고 합시다.

 

그 성도는 그냥 '열심이 덜한 성도'입니다.

많은 다른 장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열심' 면에서 보자면

그 성도는 그냥 '열심이 덜한 성도'입니다.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절대 외부적으로 그렇게 말을 하긴 힘듭니다.

"그 성도는 열심이 덜한 것 같아."

만약 A라는 사람이 외부적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면,

사람들은 A를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거나,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혹은 그 말을 들은 '열심이 덜한 성도'는 상처받을 것입니다.

 

A 성도가 언제 '그 성도가 나는 싫어' 이렇게 말했습니까?

그저 '열심이 덜한 성도'를 '열심이 덜한 성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건 제 이름 '정도현'을 '정도현'이라 부른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마치 '열심이 덜한 성도'에 대해서 '열심이 덜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상한 미덕(?) 때문에 우리는 '아닌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닌 것'에 대한 대화는 서로 암묵간에 대화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목사님이 올려 주신 글대로,

교회 안에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D타입'을 심었다고 합시다.

(이것은 마귀의 흔한 전략입니다.)


우리는 그 'D타입'에 대해 토론해야만 합니다.

'D타입'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 영광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누룩을 온 덩이에 퍼뜨리고 있는데!!!

한 사람도, 아닌 걸 아니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한 사람도, 그 D타입이 D타입인 것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마귀야-. 교회를 계속 무너뜨리렴. 우리는 묵묵히 보고 있을께."

이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D타입'에 대해,

"그 성도, 교회에서 하는 행동이 이상하지 않아?"

라고 말해야 합니다.

절대 그 말은 "나는 그 성도가 싫어. 그 이유는 내가 사랑이 없기 때문이야."와 동의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왜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까?


이건 정말 슬프고 무서운 것입니다.

이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볼까요?

우리가 가진 그 '이상한 미덕(?)'이 만들수도 있는 무서운 미래에 대해 말해볼까요?


예전에 김시완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 '요셉의 기초 소양'의 리플로 비슷한 말을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미래에 대외적으로 퍼진다면,

분명히 이 이상한 미덕(?)이 목사님에게는 큰 걸림이 될 것입니다.

"현 시대의 기독교는 이상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따라 제대로 가르치고 실천하는 교회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듭니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거의 모두가 지옥에 갈 것입니다!"

이 말은 그냥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이상한 미덕(?)에 열심히 가르침받은 외부인들은 목사님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부정적이지?"

"기독교회 간의 화평을 깨는구만!"  
 

우리 목사님만큼 긍정적이시면서 화평을 추구하시는 분을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이상한 미덕(?)이 우리 목사님을 정반대의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참 기독교인은 떳떳이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누구보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그 행동은 잘못됐어요.", "저 사람은 다른 성도들에게 안좋은 영향만 미치는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은 우리가 '사랑'이 있기 때문에 당당히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엔 '그 상대를 향한 사랑'이 가득하므로,

아니면 적어도 '악의'가 조금도 없으므로!

우리의 말은 결코 공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지적할 때, 그 누구도 그 어머니를 부정적인 사람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 속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자신의 아이를 보고 '그 아이는 나쁜 아이인 것 같으니 어울리지 않는게 좋겠다'

라고 말하는 건, 어머니가 부정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 상처받지 않아야 합니다.

 

감사교회 셀 모임 안에서는 이런 허심탄회한 대화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 압니다. 사회 분위기 상,

그리고 제가 깨달았던 착오의 과정들로 인해

염려가 되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P.S :

혹시 앞으로도 제 글이 틀리면 꼭 직접적으로 댓글달아 주세요.

옮으면 옳고, 아니면 아니고 확실히 말해주세요.

성도님들이 저를 사랑해주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알기 때문에 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시는 것에

저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김진국 : 2011/06/14    

꼭 직접적으로 말해 옳습니다.


이진배 : 2011/06/14    

도현 형제가 참된 미덕이 무엇인지, 또한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진정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본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팽배하게 되면 더 이상 우리 감사교회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철저한 신본주의로 우리 마음을 다시 한번 정비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도현 형제님~ 감사합니다.


김시완 : 2011/06/14    

기본적인 동의를 표하면서 첨언하면, 교회 안에서는 꼭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거룩한 영성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7단계 양육 시스템도 일종의 그런 목적에서 만든 것이지요. 영분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사랑, 관용, 화평, 온유, 절제와 같은 미덕이니까요.


노예천 : 2011/06/14    

도현이형 말이나 시완선생님 말이나 참 공감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박정룡 : 2011/06/14    

냉철한 이성과 따스한 사랑이 공존하는 교회가 되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


정도현 : 2011/06/14    

김시완 선생님의 말씀 정말 옳습니다.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려주셨네요-^^ 그래서 감사교회 시스템이 기독교역사상 전무후무한 엄청난 시스템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황승욱 : 2011/06/14    

포인트는 "영분별은 사랑에서 시작 된다"는 것이라고 이해해되 되겠지요? 우리는 사랑이 없이 그저 "나쁘게만" 사람을 봐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나쁘고 부족한면만"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를 "분별을 잘하는 사람", "날카롭고 정확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의 누군가에 대해 분별할 때, "내 마음 속에 그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저 어떤 성도를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참으로 있다면, 실제적으로 그 성도를 돕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접 만나서 권면하든지, 그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저 말 뿐이라면, 특히 뒷말만 한다면, 저는 이것을 영분별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룡 : 2011/06/14    

교회 안에서는 영분별도 사랑으로 권면의 말도 사랑으로 행해야겠습니다.


노예진 : 2011/06/14    

아~ 나는 도현오빠의 이런 '쿨'한 글이 너무 좋아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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