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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
노병기    2013-01-14 23:14:26   
【†필독!】(✣설교)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온 힘을 다해 주님의 어린 양을 돌볼 것입니다!

 


2013년 1월 13일 주일대예배 {녹취: 황승욱/김세영, 장지영}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온 힘을 다해 주님의 어린 양을 돌볼 것입니다!

 

 




* 본문말씀 요한복음 21장 15~18절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오늘 본문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서 물으시는 그런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를 만나서 뭘 물으셨느냐? 오늘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서 다른 것을 묻지 아니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똑같은 음성으로 물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처럼 아주 힘 있게 대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떻게 질문하셨느냐? 자세히 보시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냥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셔도 될 텐데, 특별히 다른 제자들 앞에서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을까요? 이것이 쉽게 말해서 요즘 말로 하면 돌직구입니다. 세게 던진 거예요. 안 그래도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난 다음에 의기소침해있는 거예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뵐 면목이 있겠습니까? 면목이 없는데 만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한다고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비교형으로 물으셨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늘 알다시피 성격이 아주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마태복음 26장 33절에 보면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옆에 이 친구들 다 버려도 저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 때 허풍 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주 뜨거운 마음, 충성의 마음을 예수님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아직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기 보면 아주 열심히 대답했어요. 여기 보면,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 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록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자기 마음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세 번이나 이 과정으로 거칩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에게 왜 이렇게 질문을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중대한 일을 맡기기 전에는 우리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테스트하시길 원하십니다. “진짜 네 마음속에 나를 향한 마음이 있느냐?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가장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에두르지 않고 정곡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정곡으로 질문하셨을 때, 이것이 어떻게 보면 베드로에게는 기회입니다. 물어주셨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다음에 의기소침해 있는데, 안 물어주셨으면 자기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잖아요.


비록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그 마음 중심에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한다는 것이 꼭 상대방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제가 질문하거나 설문하거나 할 때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참 열심히들 주님을 잘 섬기는 분들이 많은데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표현을 해야 하나님도 아시고, 저도 알 수 있고, 성도 서로 간에도 알 수 있고, 그러니까, 설문은 상당히 유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누가 제일 싫어합니까? 누가 제일 좋아합니까? 하나님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엄청 사랑할 것입니다. 매일 물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 또 심지어 위선자들, 이런 사람들은 설문을 하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요한복음 21장처럼 질문만 잘 해도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6,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여기 보면, 한 번 물어도 되는데 예수님께서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으로 세 번 물으셨습니다.



  3. 왜 그냥 한 번 물어도 되는데 왜 세 번 물으셨을까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앞으로 이 베드로가 초대교회 가운데서 감당해야 될 사명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세 번 물으셨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가 몇 번 예수님을 부인했느냐 하면, 세 번 부인했습니다. 얼마나 치욕적인 일입니까! 베드로가 세 번을 부인했으니까 세 번 물으신 것입니다.


17절 중간에 보면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세 번째 물었을 때는 베드로가 아마 그 때 생각이 났는지도 몰라요. ‘아, 내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는데 세 번째 또 물으시는구나.’ 아마 그래서 움찔했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다른 많은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사도권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지요. 수제자처럼 따라다녔지만, 예수님 생전에 세 번을 부인했으니 무슨 짝에 쓸모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중심을 보시고 세 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회복의 은혜를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께서 나를 인정하셨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셨구나!’


그래서 이제 곧 뒤에 보면 사도행전이 나옵니다만, 초대교회에 아주 기둥 같은 일꾼으로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결국에는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거꾸로 달려 죽는 그런 순교를 하기까지 베드로는 남은 생애는 절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 오늘 여러분들과 특별히 집중해보고자 하는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예수님이 물으시고 베드로가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일주 하거라.” 하실 수도 있고, “뭐 발명 하나 하거라.” 이러실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간단하지만 아주 핵심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그러면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여기 보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


16절,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영어 성경(KJV)에 보면 ‘치라’는 ‘먹이라(Feed)'와 같은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17절에도 보면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 사랑합니다.” 하니까 딱 한 가지 부탁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지금 우리들에게도 예수님께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 사랑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돌보라는 뜻입니다. “내 양을 돌보고 지키고 섬기고 그들을 양육해라!”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의 양들, 주의 성도들, 주의 백성들을 돌볼 것을 부탁하셨다는 것을 여러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의 양떼들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최근에 성쌓기에 들어오신 분들은 많이 알겠습니다만, 이제 교회 조직도 새롭게 하고, 본격적으로 섬김의 역사, 봉사의 역사를 하려고, 조직도 짜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느끼겠습니다만, 성도를 섬긴다고 했을 때, 그냥 별 생각 없는 마음으로는 섬길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는 절대 그것이 안 됩니다.



  5. 정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다른 성도를 제대로 섬기게 됩니다.


보통 많은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들 눈 때문에, 아니면 교회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나의 사회의 친교단체처럼 봉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식은 다 드러나게 되어있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어떤 봉사의 정신이 있어야 섬길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절대 제대로 봉사할 수 없습니다.



  6. 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느냐 하면, 진짜 주님에 대한 순수한 뜨거운 사랑이 없다면, 성도들을 정녕 끝까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그 성도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주어져 있지 않은 사람,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 성심성의껏 섬기겠습니까? 직분을 맡아도 그것을 끝까지 하겠습니까?


그냥 적당하게 하고 남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하고, 적당하게 하지, ‘정말 이 영혼이 주님의 양인데 이 영과 혼과 몸, 전인(全人)이 참으로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구원의 자리에 가고, 또 온전히 성화의 자리에 가고, 이 땅에서 온전히 주님의 양으로서 잘 살 수 있도록 내가 그렇게 해야지.’ 하는 그런 뜨거운 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봉사는 확실한 사랑의 동기가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직분을 맡기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사랑, 순수한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참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며칠 전에 제가 홈페이지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감사교회 직분자 1계명: 교회 모든 직분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을 올렸습니다.


모든 직분자가 항상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잠깐 읽어 드리면,


1. 감사교회의 모든 일은 봉사직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명예욕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역에 임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른 영혼을 섬기기 위해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 사랑으로 다른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맡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가 없이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은 인간적인 경연 자리밖에 안 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임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식 봉사, 우리 교회식 부흥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인간적 눈으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내가 체험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했을 때 “주님, 그러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내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가 진정으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직분을 맡을 때 참된 사랑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학교 써클 활동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영혼을 살릴 수도 없고, 주의 양들을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땅을 보니까 주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 마음에 민망히 여기시고 안타까워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의 양떼들을,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는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부족했어요. 그러니까 “베드로, 네가 정녕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일을 감당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8. 오늘 여러분들은 스스로 한 번 질문을 해보세요. ‘다른 영혼들을 돌보고 섬기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


‘내가 다른 영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기 위해서 내 삶의 에너지를 몇 프로(%) 드리고 있느냐?’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이 정녕 주님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합니다. 바울이 누가 강요해서 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누가 강요해서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있으니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까지 주의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9. 다른 영혼을 섬기고 돌보는 일을 열심히 많이 할수록 하나님 나라에서 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한 사람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어떤 중직, 책임을 많이 맡으시오!” 하면 보통 세속적인 교회, 예를 들면 서로 인간적으로 자리다툼을 하려고 하는 곳, 그런 곳에는 서로 하려는 곳도 많습니다. ‘내가 여기서 한 번 좀 우두머리가 되어야 되겠다.’ 이런 것이 많은데, 우리 교회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니까 주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그리스도의 양들을 진짜 보호하는 사람은 항상 최전방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속적 교회, 겉만 번지르르한 세속적 거짓 목사들처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짜 주의 백성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지키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귀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한 번 볼까요?


디모데전서 3장 1절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성경에 나오는 감독, 장로, 오늘날의 목사직 다 같은 말입니다. 초대교회 감독들은(교부들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다 순교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그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목회하는 거짓 목사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목회자도 감독의 직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조금 더 세부적으로 보면 각 기관의 리더들, 여러 가지 각 부의 책임자들이 다 관리자, 감독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뭔가 책임 있는 일을 맡고자 하는 사람은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주 칭찬할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 김에 2절부터 한 번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2-3절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감독의 자격인데요, 감독의 자격뿐 아니라 교회 모든 일꾼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뒤에 보면 집사의 자격도 나오는데 거의 비슷합니다.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이 말씀은 자주 나옵니다. 자기 집부터 잘 다스리는 사람이 교회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뒤에 보면 “이방인들에게도 인정받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우선 자기 개인 생활,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 아주 잘 다스려야 됩니다. 가정에서 잘 못 다스리면 교회에서 무슨 중책을 맡는다는 것은 상식에 안 맞고,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사회에서도 외인들, 일반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을 받아야 됩니다. 사회에서도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 성실하다, 지도력이 있다. 책임감이 강하다.” 이런 평을 받아야 교회 안에서도 가능한 것이지, 이런 상식적인 것을 열심히 살피지 않으면 이상해집니다.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자기 자녀들도 말을 안 듣는데, 교회 와서 다른 영혼들, 어린이들 가르치면 말 듣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새로 입교한 자”라는 것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도 초창기 개척 초기에는 시험 삼아 많이 맡기기도 하고 했습니다만, 세월이 오래 지날수록 “이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다.”라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작은 책임을 가진 일이야 덜 하겠지만, 중요한 일은 최소한 1년, 2년, 3년, 4년, 5년의 검증을 거치고 중책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검증이 안 된 것이지요. 본인도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에서 생각하고 알아야 될 것,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것을 배우려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외인은 사회 주변 사람들을 말하죠.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합니다.


8절부터는 또 집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슷합니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당장에 맡기지 말고, 시험 기간을 가지라. 그래서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11절 보세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이 "여자"라면, 특별히 집사의 아내를 말합니다. 또한 모든 직분 맡을 여자들도 포함되겠죠.

“참소하지 마라” 하면 “중상모략하지 마라.” 입이 거칠면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 교회는 작년에 선포 했습니다. 앞으로 전 교인이 절대 부정적인 말은 안하기로! 참소하는 영이 완전히 사라지게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그러니까 감독과 집사의 이름만 바꾸면 될 정도로, 뭐가 장로의 자격인지 집사의 자격인지 거의 똑같습니다.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진짜 교회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들, 다른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주의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선한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맡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 고린도전서 16장 15-16절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스데바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훌륭했습니까! 곧 아가야의 첫 열매(신자)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10. 스데바나의 집은 다른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귀한 가정이었습니다. 


성도들을 섬길 때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말씀사역으로 섬길 수도 있고, 중보사역으로 섬길 수도 있고, 봉사와 섬김의 사역으로 섬길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과 혼과 몸의 모든 필요를 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본인이 영과 혼과 몸이 성령에 충만하면, 그런 상태에서 다른 영혼을 볼 때 '저 영혼도 하나님 안에서 영과 혼과 몸이 충만해야 될 텐데.' 그런 사랑의 동기로 섬기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이런 성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6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하나님 앞에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직분자에게 복종하라.” 이런 뜻입니다.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섬기는 일입니다. 성도들의 영의 문제, 혼의 문제, 몸의 문제를 보고,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 그것을 보고는 보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사역은 섬김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잘 되기를 생각하고, 바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생각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11. 여러분들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나는 일주일동안 다른 성도들의 안녕을 위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기도했느냐? 실질적으로 에너지를 얼마나 쏟았느냐?’


에너지를 많이 쏟는 사람일수록 하나님 나라에서 보시기에 귀한 사람입니다.


에너지를 전혀 안 쏟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방관자, 파괴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죠. 항상 다른 성도들의 안녕을 위해서 에너지를 쏟아야 됩니다. 24시간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사람이 베드로 같은 사람입니다.


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다른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속 터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 안에도 그렇잖아요.  집안에도 속 터지게 하는 자녀가 있으면 힘든 거예요.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고, 힘이 나고, 기쁨이 샘솟고,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게 전류처럼 전달됨이 느껴지고, 이래야 일꾼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사람입니다.



  12. 우리가 어느 정도로 성도를 사랑해야 됩니까?


요한일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랬습니다.


“다른 성도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정도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목숨 버려 우리를 사랑하셨잖아요.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셨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목숨 버려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마땅하다.”는 그것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의 죽으신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정도가 되어야 “이 사람이 예수님의 죽으신 사랑을 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에 사도들과 성도들은 상당수가 목숨을 버렸습니다. 오늘날은 다른 성도들을 섬기라고 하는 말도 생소하지만, “목숨 버려 섬겨라! 목숨 버려 섬기는 정도까지 해라!” 이렇게 하면 “뭐 그게 말이 되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감사 교회 성도들은 그것이 어렵지 않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사람, 예수님께서 형제자매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아는 사람은 목숨을 버려 성도를 사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3년은 이런 사랑의 섬김이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세용 : 2013/01/15    

아멘!!!


홍은주 : 2013/01/15    

주님의 참된 사랑은 사람의 육신이 아닌 영혼 살리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으니 그 사랑을 받은 자로써
사랑과 섬김의 일을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모양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참 복음의 진리를 뜨겁게
전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주님의 참된 사랑을 깊이 깨달아 가도록 온 힘을 다 쏟겠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주님 안에 온전히 들어가도록 항상 온 힘을 다해 살피시고 먹이시며 가르치
시는 사랑하는 목사님의 뜨거운 설교 말씀 감사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 아멘!!!


정상훈 : 2013/01/15    

아멘! 아멘!!


김기호 : 2013/01/15    

"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 근심하여 고백한 베드로의 마음을 함께 나누오며
직분을 뜨겁게 감당한 사도들의 뒤를 따라 "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하신 주의 말씀을 순종하겠습니다!!


서영선 : 2013/01/15    

아멘!!!


유리나 : 2013/01/15    

아멘..!!


지현진 : 2013/01/15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19~20) 아멘!!!


이제환 : 2013/01/16    

목사님의 모든 설교가 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제 자신을 곰곰히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너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저도 스데바나의 가정처럼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된 삶을 살겠습니다. 아멘!!!


박소연 : 2013/01/16    

아멘!!


윤지명 : 2013/01/16    

아멘!!아멘!!!


유지선 : 2022/05/31    

아멘 감사하니다


권소용 : 2023/11/05    

아멘!!


정은경 : 2023/11/10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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