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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 1
김진원    2013-09-28 23:43:54   
신앙 생활의 요체는 사회성에 있습니다.

2013년 7월 26일 성장반 자율말씀나눔

* 제목 : 신앙 생활의 요체는 사회성(붙임성,화합성)에 있습니다.

* 마태복음 13장 18~23절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위의 말씀에 보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아서 그렇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거듭남의 말씀도 마찬가지고, 새생활론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을 때 그것이 곧 부흥의 시작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말씀을 하나 씩 깨달을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준다고 하여도 깨달은 말씀과 바꾸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홍성택 선생님도 학생회관 동아리방에서 성경을 읽다가, 예정에 관한 말씀을 깨닫고 너무 기뻐서 학교 교문까지 신나게 뛰어갔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깨닫는 것이 있어야 말씀이 살아 운동하는 말씀이 됩니다.

 저도 최근에 크게 깨달은 말씀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이성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라는 목사님 말씀을 들을 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 나누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성쌓기 핵융합의 7가지 단계 중에서 특히 3단계에 “친화력”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은 목사님께서 2012년 12월 29일에 올린 글입니다.

“신앙생활의 요체는 사회성(붙임성, 화합성)에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신앙생활의 요체라는 것은 핵심인데 핵심이 사회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수준 높은 신앙생활이란 대단한 경건과 능력 속에서 자기를 수련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예언도 하고 그런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40일 금식기도도 하고 신비한 은사를 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금식하고, 자기 수련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이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신비한 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타종교도 비슷합니다. 자기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고 명상을 통해 수준 높은 경지로 가기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어떤 신비한 것이 영적이며 그런 영적인 것이 선이라는 착각 속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맹위를 떨쳤습니다. 영지주의는 잘 알다시피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겁니다. 이 논리를 발전시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육체로 임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과 기독교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목숨 걸고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을 전하기 위해 온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뭔가 오묘하고 신비한 것에 영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에 중세시대 때는 그림도 자연을 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가치가 있고 귀하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상징적으로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어째든 신앙생활의 요체가 사회성에 있다는 너무나 쉬운 진리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황당귀신이 많은 사람들을 미혹했다는 생각이듭니다.

 저도 돌이켜보면 이런 신비주의 누룩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목사님께서 “가장 이성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다”라는 말씀을 전해 주실 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룩과 사랑은 사교성에 집약됩니다!!! 천국으로 가는 수레바퀴는 거룩과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룩과 사랑은 결국 친화력으로 귀결됩니다.”

 거룩과 사랑이 많을수록 친화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과 사랑이 있어 보여도 친화력이 없다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2000년 사에서 경건에 관해 이런 개념을 가지고 교회를 섬겼던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목사님이 사회성과 친화력에 관한 말씀을 이해하셨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노샘프턴 교회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부흥의 불길도 쉽게 꺼지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는 노샘프턴 교회보다 낫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노샘프턴 교회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낫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개개인의 경건이 났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낫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기초소양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까? 노샘프턴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지의 땅으로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초소양이 매우 좋았다고 충분히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흥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거주하던 코네티겟 골짜기에는 찬송소리와 기도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노샘프턴 교회보다 나은 점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했을 때는 말씀과 신학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노샘프턴 교인들이 경건은 사회성과 친화력으로 귀결될 때에라야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하고 3년 동안 같이 먹고 자고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얼마나 친화력이 좋으셨는지 요한은 스승과 제자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 품에 자연스럽게 안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고,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저절로 증인이 됩니다. 부흥이 저절로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친화력으로 사랑의 핵융합을 이룬다면 우리는 다 이룬겁니다.

 그런데 이 쉬운 개념을 왜 이천년 교회사에서 잘 이루지 못했을까요? 황당귀신의 역사도 있겠지만, 간단치 않은 면이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친화력이라는 단어는 어감도 편하고 쉽게 느껴지는데 적용면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친화력은 모든 사람을 품는 친화력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A타입만 모여있다면 쉽겠지만 현실적으론 대부분이 C타입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성격이 점점 더 좋게 바뀌어 가는 사람은 A타입 입니다. A타입은 백만명 중에 한 명입니다.

나름대로 조금씩 바뀌는 사람은 B타입, B타입은 만 명 중의 한 명입니다!

C타입은 지구가 태양을 주변을 공전하듯이 천천히 평생에 걸쳐 5도 정도 바뀝니다. 인간들 대부분이 다 C타입 이하입니다. 안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평생 5도 정도 움직입니다.

사람들이 시험 받는 이유가 주로 ‘상대방이 좀 바뀌어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 환상을 깨야 합니다. 자기도 잘 안 바뀌니 말입니다.

‘상대방이 바뀌어줬으면……..’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마세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본인이 먼저 바뀌면 됩니다. 내가 아주 훌륭해지면 됩니다.“

그러니까 핵융합을 하려면 상대방의 결점을 다 받아들이고 친화력으로 서로 비벼야 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이러면 안됩니다. 상대방은 안 바뀝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못하고 자기 기호에 맞는 사람하고만 친하려고 하니 교회적으로 이것을 이루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룩과 사랑의 귀결로 사회성과 친화력을 높여야겠습니다.

 사회성을 높이고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오픈하는 오픈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예수님에게도 마음 문을 잘 열질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제는 형제 자매에게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부족한 점이 문제가 되지 않았듯이,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아야합니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잠 27:19).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철이 혼자서 날카롭게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친밀감으로 어우러질 때 우리 얼굴이 빛나게 되고 사랑의 핵폭발이 일어나 말세지말에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홍은주 : 2013/09/29    

현실적 상황에서 제게 가장 취약한 부분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앙생활이 제 관점에서만 행하게 되지 않도록 늘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마음을 오픈하여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겠습니다.


김세정 : 2013/09/29    

아멘!!!!! 아멘!!!!!


정도현 : 2013/09/30    

아멘! 말씀도 좋았지만 글로 다시 읽으니 정말 좋아요-^^!
감사합니다,선생님!^^


이제환 : 2013/09/30    

너무 유익하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거룩"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아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글을 읽으니 성도가 성도를 바라 볼 때 마음의 온도가 뜨겁고, 마음의 거리가 가까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거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은아 : 2013/09/30    

아멘!!!


김시완 : 2013/09/30    

아멘!


홍성택 : 2013/09/30    

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성호재 : 2013/09/30    

아멘!


최민호 : 2013/09/30    

아멘, 들어도 좋고 읽어서 더 좋습니다.


박지선 : 2013/10/01    

아멘


양진영 : 2013/10/01    

아멘 감사합니다 아직 지혜가 부족한 저에게 깊은 깨달음의 말씀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진영 : 2013/10/01    

조운-감사합니다. 저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드네요. 다시한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박정룡 : 2013/10/01    

아멘!!


권소용 : 2013/10/01    

아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자신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도 김진원 선생님처럼 이성적인 것이 영적이라는 것과 거룩은 사회성이라는 이 두 가지의 깨달음이 젤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민효진 : 2013/10/02    

아멘!!


최정숙 : 2013/10/02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우진 : 2013/10/02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감사교회에 와서 친화력 좋은 성도들을 보고 천국이 이런 곳이겠구나 싶었습니다. ㅋㅋ 저도 많이 변했고요~


유리나 : 2013/10/02    

아멘..^^


이제훈 : 2013/10/02    

아멘!

영적 인 감칠맛이
바로 이맛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할렐루야!


이세용 : 2013/10/03    

아멘!!


김형진 : 2013/10/05    

감사합니다. 정말 귀한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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