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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1
노병기    2012-01-03 17:22:33   
{사랑의 반죽과 내적 치유1: 최민호, 설동준}

 

{사랑의 반죽과 내적 치유1: 최민호, 설동준}


좋아좋아 감사 성도 여러분,

2012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완벽한 내적 치유의 은혜를 예비하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최민호 형제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먼저 주셨고, 이에 발맞추어 설동준, 주현계 형제도 이 사역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주현계 형제는 두 개의 매우 훌륭한 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내게 미리 검토를 요구해서 읽어 본 바 그 내용과 깊이가 매우 탁월합니다.)


아래는 민호 형제가

지난 해 12월 29일 목요일 제게 첫 치유 관련 메일을 검토해 달라고 보낸 처음 글부터 동준 형제가 수정한 것, 민호 형제가 다시 수정한 것 등 다 소개해 놓았습니다.


미완의 글들이지만  

민호 형제가 고민하고, 동준 형제가 수정한 그 과정을 살펴보면 느끼게 되는 바가 많습니다.


(아래는 동준 형제가 어제 월요일 날 민호 형제에게서 받은 글입니다.

내가 오늘 동준 형제에게 전화하니까

동준 형제가 자기가 한 번 더 수정하고 완성된 것을 내게 보내겠다는 것을

먼저 나에게 그 중간 원고라도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시간과 힘이 되는 분은 본인들이 스스로 동참하여 최종 완성본을 만들어 가는데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모으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이미 탁월한 글이지만)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잠 24:6)



사랑의 반죽과 내적 치유1

설동준 형제 수정 후 최민호 형제 수정한 글(2012. 1. 2. 월)

(밑줄은 민호 형제가 수정한 것)


사랑의 반죽이 잘 되려면,

지난 수요일, 목사님께서 “사랑의 반죽을 잘 하려면 친밀함과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친(親)혈육보다 더 가깝게 진리 안에서 서로 숨김이나 막힘이 없이 교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제는 예전과 달리 그것이 가능해졌다. 거의 다 되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 된다.”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친밀감과 개방성의 순도를 높이는 것의 중요함과 순도를 낮추는 요인을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전과 달리”라는 목사님의 표현에서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거의 다 된 현재’와 달리, 그 ‘예전’에는,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 또는 ‘거듭났더라도 온전하게 성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인격적인 결점들(약점들)’이 있었습니다. 진리 없이 사교에 그치는 피상적인 교제가 많았고, 거칠고 무신경한 언행(言行)으로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목사님은 얼마나 많이 고통 받으셨을까?’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은혜의 2011년입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은혜와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온전한 한 지체를 이루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애찬의 암초

두 가지 애찬의 암초를 제거해야 친밀감과 개방성의 순도, 즉 ‘사랑의 반죽’의 순도가 올라갑니다.

첫째,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는 엄밀히 아직 거듭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은 진정한 의미에서 ‘거룩함’과 ‘사랑’으로 살지 못합니다. 순간순간 거듭나지 않은 성품으로 인해 불신하고, 찌르고, 용서하지 못하고, 교만하며, 포장하고, 쉽게 분노합니다.(이것이 거듭나지 않은 표징입니다.) 본인이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상태와 마음으로는 친밀하고 열린 교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그 심령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온전히 성품을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를 거듭남과 성화로 구분하여 살펴봅시다.


둘째, ‘거듭났더라도 인격적인 결점들(약점들)’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막 거듭난 상태는 하나님 나라에서 갓 출생한 상태입니다. 완벽과 완전을 향해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본격적으로 쓰임 받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자신의 기질적인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성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결심문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화의 과정이 없다면 어떨까요?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성향 때문에 성경의 교리를 폐기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성도 간의 친밀한 교제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온전한 내적 치유, 완전한(완벽한) 내적 치유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보면 ‘거듭남’은 ‘온전한’ 내적 치유로, ‘성화의 과정’은 ‘완전한(완벽한)’ 내적 치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사랑의 반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죄스러운 마음의 ‘성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치 악성 종양이 퍼져 있는 간을 몸 밖으로 떼어내고 새로운 간을 이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요양기간이 필요합니다. 이식된 간이 다른 장기와 조화를 이루어서 신체의 각 기능을 회복하고 강건해져야 합니다. 이 때, 간에 무리를 주는 생활습관이나 약물, 음식물 등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화의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완벽한 강건함에 이르려면 거듭남뿐만 아니라, 거듭남 이후 절차탁마하는 성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이해가 이미 성경에 명료하고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적인 거듭남과 성화의 과정을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에는 크게 세 가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정신적/정서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종양이 양성인지, 악성인지 조직검사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불명확한 영적인 상태를 내적 치유라는 현미경으로 보다 명확하게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애매한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확실한 은혜에 거할 수 있도록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거듭남 이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인격적인 약점들을 가급적 빠르고 확실하게 고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인격장애의 요소들이나 정동장애, 기분순환 장애와 같은 정신(마음)에 대한 지식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맞게 집중해야 할 기질적인 약점은 없는지(없다면 그냥 통과하시고) 살펴보고, 있다면 이를 집중해서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셋째, 내적인 거룩함이 없는 신비주의, 기복주의, 은사주의, 자유주의 영성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실제 성령께서 하시는 영혼의 거룩한 치유가 없는 신앙의 모습을 가려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목표에 집중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1. 구원의 6단계는 곧 내적 치유의 과정입니다. [구원론]

 예수님의 영은 치유하시는 영입니다.

 내적 치유는 죄성으로부터의 회복입니다.

 자기부인은 병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을 강력하게 해야 성령의 조명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조명이 강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병(죄성)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성령께서 내주하실 때, 사랑의 영이 심령에 가득찬다. 이 때, 온전한 내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2. 성령의 12가지 표징 = 내적 치유의 12가지 표징 [구원론] // 영분별론

 온전히 고침 받지 않았다면, (아직 뭔가 개운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영이 그 심령에 아직 온전히 내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3. 존번연 목사님, 내적 치유를 가장 크게 체험하신 분 [구원론]

 ‘죄인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와 ‘천로역정’


4. C타입의 요소는 인격장애의 요소 [구원론], [새생활론]

 교만한 성향과 자기애성 인격장애

 노하고 다투는 성향과 경계성 인격장애

 과장하고 포장하는 성향과 연극성 인격장애

 무자비하고 찌르는 성향과 반사회적 인격장애


5. 웨슬리 목사님, 내적 치유가 완전하지 않으셨다?! [새생활론]

 ‘강박적 인격장애의 가능성?!’과 ‘선택론, 예정론, 견인론의 폐기’를 중심으로


6. 전이와 투사, 반동형성 [구원론], [새생활론]

 아버지를 혐오하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기 어렵다. 


7. 마음의 병은 주로 가정에서 생긴다. [구원론], [새생활론]

 정신과적으로 중요한 영, 유아기

 도깨비 같은 아버지, 귀신 같은 어머니


 

설동준 형제가 수정한 것(2011. 12. 31.)


사랑의 반죽이 잘 되려면,

지난 수요일, 목사님께서 “사랑의 반죽을 잘 하려면 친밀함과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친(親)혈육보다 더 가깝게 진리 안에서 서로 숨김이나 막힘이 없이 교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제는 예전과 달리 그것이 가능해졌다. 거의 다 되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 된다.”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친밀감과 개방성의 순도를 높이는 것의 중요함과 순도를 낮추는 요인을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전과 달리”라는 목사님의 표현에서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과거에는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 또는 ‘거듭났더라도 온전하게 성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인격적인 결점들(약점들)’이 있었습니다. 진리보다는 사교가 중심이 되는 교제를 많이 했고, 거칠고 무신경한 언행(言行)으로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목사님은 얼마나 많이 고통 받으셨을까?’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은혜의 2011년입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은혜와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온전한 한 지체를 이루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애찬의 암초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는 엄밀히 아직 거듭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은 진정한 의미에서 ‘거룩함’과 ‘사랑’으로 살지 못합니다. 순간순간 거듭나지 않은 성품으로 인해 불신하고, 찌르고, 용서하지 못하고, 교만하며, 포장하고, 쉽게 분노합니다.(이것이 거듭나지 않은 표징입니다.) 본인이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상태와 마음으로는 친밀하고 열린 교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그 심령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온전히 성품을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를 거듭남과 성화로 구분하여 살펴봅시다.

 

 온전한 내적 치유, 완전한 내적 치유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보면 ‘거듭남’은 ‘온전한’ 내적 치유로, ‘성화의 과정’은 ‘완전한’ 내적 치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사랑의 반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죄스러운 마음의 ‘성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병 중에 있던 사람이 회복기로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큰 수술 후 요양기간을 가지면서 기력과 신체의 각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한 것처럼, 온전한 강건함에 이르려면 거듭남 이후 절차탁마하는 성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이해가 이미 성경에 명료하고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적인 거듭남과 성화의 과정을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에는 크게 세 가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정신적/정서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미세한 골절의 부위를 X-선이나 CT로 찍어서 병을 확인하듯이, 불명확한 영적인 상태를 내적 치유라는 현미경으로 보다 명확하게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애매한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확실한 은혜에 거할 수 있도록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거듭남 이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인격적인 약점들을 가급적 빠르고 확실하게 고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인격장애의 요소들이나 정동장애, 기분순환 장애와 같은 정신(마음)에 대한 지식을 소개함으로써, 성도분들이 스스로 성화의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문제와 방법을 아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부가적으로 가정마다 유전되는 죄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셋째, 내적인 거룩함이 없는 신비주의, 기복주의, 은사주의, 자유주의 영성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실제 성령께서 하시는 영혼의 거룩한 치유가 없는 신앙의 모습을 가려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목표에 집중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1. 구원의 6단계는 곧 내적 치유의 과정입니다. [구원론]

                예수님의 영은 치유하시는 영입니다.

                내적 치유는 죄성으로부터의 회복입니다.

                자기부인은 병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을 강력하게 해야 성령의 조명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조명이 강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병(죄성)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성령께서 내주하실 때, 사랑의 영이 심령에 가득찬다. 이 때, 온전한 내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2. 성령의 12가지 표징 = 내적 치유의 12가지 표징 [구원론] // 영분별론

                온전히 고침 받지 않았다면, (아직 뭔가 개운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영이 그 심령에 아직 온전히 내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3. 존번연 목사님, 내적 치유를 가장 크게 체험하신 분 [구원론]

                ‘죄인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와 ‘천로역정’

 4. C타입의 요소는 인격장애의 요소 [구원론], [새생활론]

                교만한 성향과 자기애성 인격장애

                노하고 다투는 성향과 경계성 인격장애

                과장하고 포장하는 성향과 연극성 인격장애

                무자비하고 찌르는 성향과 반사회적 인격장애

 5. 웨슬리 목사님, 내적 치유가 완전하지 않으셨다?! [새생활론]

                ‘강박적 인격장애의 가능성?!’과 ‘선택론, 예정론, 견인론의 폐기’를 중심으로

6. 전이와 투사, 반동형성 [구원론], [새생활론]

                아버지를 혐오하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기 어렵다.  

7. 마음의 병은 주로 가정에서 생긴다. [구원론], [새생활론]

                정신과적으로 중요한 영, 유아기

                도깨비 같은 아버지, 귀신 같은 어머니




최민호 형제 원본(2011. 12. 30. 금)


사랑의 반죽이 잘 되려면,

지난 수요일, 목사님께서 ‘사랑의 반죽을 잘 하려면 친밀함과 개방성을 갖아야 한다.’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친혈육보다 더 가깝고 진리 안에서 서로 숨김이나 막힘없이 교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제는 예전과 달리 그것이 가능해졌다. 거의 다 되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앞으로는 더 기대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이에 친밀감과 개방성의 순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순도를 낮추는 요인을 파악해서 제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과 달리”라는 목사님의 표현에서, 과거를 잠시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 예전에는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 ‘거듭났더라도 여전히 성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여러 인격적인 결점들(약점들)’이 있었습니다. 진리 없이 사교에 그치는 공허한 교제를 많이 하고, 거칠고 무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목사님은 얼마나 많이 고통 받으셨을까? 다시 한 번 돌이켜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은혜의 2011년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애찬의 암초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는 엄밀히 아직 거듭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은 거룩과 사랑으로 살지 못합니다. 순간순간 거듭나지 않은 성품으로 인해 불신하고, 찌르고, 비난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교만하고, 포장하고, 쉽게 분노합니다. (이것이 거듭나지 않은 표징입니다.) 본인이 의도하든 안하든, 그 정도가 약하든 심하든 결국 이러한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친밀하고 열린 교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그 심령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온전히 성품을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거듭났더라도 인격적인 결점들(약점들)’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장점이 상황에 따라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위로하고 안위해야 할 때, 쎈 말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게으르고 배려 없는 것입니다. 강한 성향일수록 부드러운 성향 갖기를 노력하고, 부드러울수록 강한 성향에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거듭난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을 동시에 갖고 계십니다. 상황에 맞게 사람에 맞게 한 심령을 더 깊이 사랑하시기 위해, 두 성향을 조화롭게 선용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아가야 친밀하고도 깊은 사랑의 교제, 진리 안에서 열린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두 가지 애찬의 암초를 제거해야 친밀감과 개방성의 순도, 즉 ‘사랑의 반죽’의 순도가 올라갑니다.

 

온전한 내적 치유, 완전한 내적 치유

거듭나는 것을 온전한 내적 치유로, 성화의 과정을 완전한 내적 치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이러한 사랑의 반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죄스러운 성품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병에 걸린 사람이 낫는 것과 같습니다. 불신하고, 찌르고, 비난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교만하고, 포장하고, 쉽게 분노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고질적인 병이 치유되어서, 잘 믿고 감싸주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거듭남 이후에 남아있을 수 있는 인격적 결함(약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수술 후에 요양이 필요한 것처럼, 약한 면을 보완하고 이전보다 건강한 것을 넘어서 완벽한 강건함에 이르려면, 절차탁마하는 성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이해가 실은 성경에 이미 명료하고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거듭남과 성화의 과정을, 내적 치유의 과정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에는 크게 세 가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거듭남이 애매한 상태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점검의 근거를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마치 육안을 감별하기 미세한 골절의 부위를, X-선이나 CT로 찍어서 확인하듯이, 애매한 영적인 상태를 내적 치유라는 스펙트럼으로 보다 명확하게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애매한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확실한 은혜에 거할 수 있도록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거듭남 이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인격적인 약점들을 가급적 빠르고 확실히 보완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인격장애의 요소들이나 정동장애, 기분순환 장애와 같은 정신(마음)에 대한 지식을 소개함으로써, 성도분들이 스스로 성화의 초점과 내용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부가적으로 가정마다 유전되는 죄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셋째, 내적인 거룩함이 없는 신비주의, 기복주의, 은사주의, 자유주의 영성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실제 성령께서 하시는 영혼의 거룩한 치유가 없는 신앙의 모습을 가려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목표에 집중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1. 구원의 6단계는 곧 내적 치유의 과정입니다. [구원론]

                예수님의 영은 치유하시는 영입니다.

                내적 치유는 죄성으로부터의 회복입니다.

                자기부인은 병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을 강력하게 해야 성령의 조명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조명이 강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병(죄성)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성령께서 내주하실 때, 사랑의 영이 심령에 가득찬다. 이 때, 온전한 내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2. 성령의 12가지 표징 = 내적 치유의 12가지 표징 [구원론] // 영분별론

                온전히 고침 받지 않았다면, (아직 뭔가 개운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영이 그 심령에 아직 온전히 내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3. 존번연 목사님, 내적 치유를 가장 크게 체험하신 분 [구원론]

                ‘죄인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와 ‘천로역정’

 4. C타입의 요소는 인격장애의 요소 [구원론], [새생활론]

                교만한 성향과 자기애성 인격장애

                노하고 다투는 성향과 경계성 인격장애

                과장하고 포장하는 성향과 연극성 인격장애

                무자비하고 찌르는 성향과 반사회적 인격장애

5. 웨슬리 목사님, 내적 치유가 완전하지 않으셨다?! [새생활론]

                ‘강박적 인격장애의 가능성?!’과 ‘선택론, 예정론, 견인론의 폐기’를 중심으로

 6. 전이와 투사, 반동형성 [구원론], [새생활론]

                아버지를 혐오하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기 어렵다.  

 7. 마음의 병은 주로 가정에서 생긴다. [구원론], [새생활론]

                정신과적으로 중요한 영, 유아기

                도깨비 같은 아버지, 귀신 같은 어머니


[보완의 요점]

1. 사랑의 반죽을 하는데 이물질, 즉 애찬의 암초를 크게 두 가지, ‘애매한 거듭남의 상태’, ‘성화되어야 할 인격적 결점, 약점’으로 보았습니다.

2. 이 애찬의 암초들은 결국, 내적 치유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며,

3.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의 바라보는 거듭남의 점검, 성화, 영분별’로 초점을 좁혀보았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 애매한 표현을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많이 길어지고 각 연재의 내용과 많이 겹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글 중, 연재의 필요성과 목적은 위에 말씀 드린 대로 따로 떼어서 보다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각론에 해당하는 연재와 겹치는 내용은 아예 연재의 소제목으로 합쳤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맥락에 맞고 또 그 흐름을 타야 효력이 더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죽에서 내적 치유까지의 연결고리를 설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짧은 글을 쓰면서, 저의 여러모로 부족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동시에,

거룩한 구원을 지으신 목사님의 노고에 더욱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민호 형제 초고 1 2011. 12. 29(목)

- 내가 분량이 작고 너무 설명이 간단하니 좀 더 자세히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위 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초고도 그 나름대로 좋습니다.


구원의 서정은 내적 치유의 과정이다.


예수님의 영은 치유하시는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기적을 베푸시되 유독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일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예수님의 영, 성령은 치유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하실 일을 미리 유비로 암시하신 것입니다. (말 4: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의원에 비유하시기도 하셨습니다.(마 9:12, 막2:17, 눅 4:23)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치유하셨을까요?

 내적 치유는 죄성으로부터의 회복입니다.

모든 인간은 거듭나기 전에는 원죄로 인해, 아담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처음 지으신 형상을 잃고, 믿음, 소망, 사랑 안에 살지 못합니다. 거듭나면 반대가 됩니다. 죄와 여러 인격적인 결함을 포함하고 있는 죄성에서 회복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믿음, 소망, 사랑 안에 살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회복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자의 12가 표징이 결국 내적 치유의 증거입니다.

  구원의 서정은 내적 치유의 과정입니다.

부르심의 은혜에서부터 자기부인, 율법적 회개, 칭의, 성령의 조명, 복음적 회개, 성령의 내주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영혼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 안에 있던, 죄와 죄성, 그리고 여러 인격의 결함들을 알게 되고 또한 고침 받습니다. 성령께서 진리로 조명해 주실 때, 우리 자신에 국한된 문제들 뿐만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유전되는 구체적인 죄와 죄성, 그리고 아담의 원죄까지 알게 하십니다. 고침을 받을 때, 아담의 원죄까지 확실히 고쳐 주십니다.  

  

온전히 고침 받지 않았다면, (아직 뭔가 개운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영이 그 심령에 아직 온전히 내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소문난 명의가 환자를 고치되 반만 고쳤다고 생각해 봅니다. 암조직을 떼어내다가 만다던지, 항암제를 주다가 만다던지, 진통제만 준다던지 하면, 환자는 전보다 더 낭패가 됩니다. 환자 본인은 살았다고 치유되었다고 착각하기 되기 때문에 큰 낭패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영이 이렇게 무자비하실까요? 만약 어떤 기이하고 신비로운 영적인 체험은 있으되, 본인이 명백히 알 정도로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내적 치유가 없다면, 아직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심령이 거룩하고 따뜻하지 않다면 아직 성령께서 내주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내적 치유의 결과는 거룩과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의 영으로 새롭게 건강해진 피조물은 본래 지음 받은 형상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계획적이고 실천적인 형태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자신도 알고 남도 알게 됩니다. 만약 선의를 갖고 있는 주변 성도들이 그러한 사실을 명백히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본인이 내적으로 치유되었다고 느낄지라도 일련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내적 증거를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내적 치유는 죄성에서의 회복입니다. 다시말해, 치유가 온전하지 않으면, 죄성에서 온전히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실생활이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내적 치유가 온전한지 돌아보는 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보다 자세하고 실재적으로 점검하는 또다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남 이후, 자칫 막연하고 추상적일 수 있는 성화의 과정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이 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났을 지라도, 작은 인격의 결함이나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완전한 치유의 관점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본다면, 각 사람마다 성화의 초점이 보다 명확해질 것입니다.

 

 각 개인의 내적 치유가 온전해야 사랑의 반죽이 잘 됩니다.

사랑의 반죽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온전하지 않은 거듭남과 완전을 향하지 않는 성화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의 반죽은 내적 치유의 온전함과 완전함에 달려 있습니다. 각 개인이 온전하고 완전한 내적 치유를 통해, 거룩하게 살고 사랑하면서 살게 될 때에는 반죽이 아니 되고 싶어도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안에 행하는 예수님의 영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가 처음 쓰는 글의 분량입니다. 주로 내적 치유에 대한 설명과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성령내주를 점검할 필요성에 대해서 써봤습니다. 앞으로의 내용을 위한 예고편의 성격이 강합니다. 일단 운을 띄우고 구체적인 내용은 교회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해 보겠습니다.

 길게 쓰면, 읽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짧게 썼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퇴고하지 못했습니다. 퇴고 하면서 더 줄여볼까 생각중입니다. 금요일 오전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손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금방 정리해 본 연재 예정 중인 소제목들입니다.

 C타입의 요소는 인격장애의 요소입니다.

                교만한 성향, 자기애성 인격장애

                노하고 다투는 성향, 경계성 인격장애

                과장하고 포장하는 성향, 연극성 인격장애

                무자비하고 찌르는 성향, 반사회적 인격장애

 구원의 서정은 내적 치유의 과정입니다.

                자기부인은 병식을 갖는 것이다.

                자기부인을 강력하게 해야 성령의 조명이 임하신다.

                성령의 조명이 강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병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

                성령께서 내주하실 때, 사랑의 영이 심령에 가득 찬다. 이 때, 온전한 내적 치유가 일어난다.

 웨슬리 목사님, 내적 치유가 완전하지 않으셨다?!

:: 강박적 인격장애의 가능성?!?

 존 번연 목사님, 내적 치유의 은혜를 가장 크게 체험하신 분

::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내적 치유의 은혜’와 ‘죄인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그리고 ‘천로역정’

 전이와 투사, 반동형성

                아버지를 혐오하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기 어렵다.  

                혐오스러운 아버지를 동정하면, 불신자와 결혼하기 쉽다.

 

..........................

감사 성도 여러분,

이상 민호 형제와 동준 형제의 글 잘 읽었지요?

 

교사들은 위 내용을 잘 읽어 보고 교사 모임에 오시기 바랍니다.(토의 주제)


특히 내적 치유의 관점에서 거듭남과 성화의 차이를 잘 생각해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이제훈 : 2012/01/03    

 6. 전이와 투사, 반동형성 [구원론], [새생활론]
      아버지를 혐오하면,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기 어렵다.  

아주 날카로운 통찰력이네요!!
할렐루야!!


김의영 : 2012/01/04    

전무후무가 여기서도 느껴지네요!


정도현 : 2012/01/04    

마구 똑똑해지는 느낌인데요? ^^ㅎㅎ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깊이 사유하며 배울 수 있겠어요- 많은 영혼들에게 유익이 될거라 믿습니다!! 대단해요! ^^


권소용 : 2012/01/04    

이러한 이해가 성경에도 나와있다고 하니 더욱 철저하게 밑바닥까지 들어가보고 싶네요......
민호형제 동준형제 고맙습니다~~ ^___^


강유진 : 2012/01/04    

이건뭐... 정말 신학자가 책을 내는 수준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수준입니다!!너무 놀라워요!!존경합니다!!


홍은주 : 2012/01/04    

우리 감사교회 전무후무한 청년부형제님들의 사유를 정말 존경합니다!
저도 거듭난 이후 변화되어지는 마음상태를 느끼며 이것은 마치 컴퓨터의 예를 들어
기존의 오류투성이의 낡은 칩이 새로운 칩으로 교체되어(거듭남) 컴퓨터체계를 완전히
다른 체계로 하나하나 새롭게 바꾸어가고 (성화)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칩이란 바로 치유하시는 주성령님께서 낡아버린 저의 마음을 보시고 들어와
주셔서 지금도 더 깊이 구석구석 주님을 닮아가는 마음구조로 바꾸어 주시고 계십니다.

형제님들의 깊은 사유를 글로 정리하여 연재해 주시면 훨씬 더 은혜가 은혜롭게 여겨지며
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늘 겸손한 신앙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신앙의 깊이를 더 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이심이 느껴집니다!


정상훈 : 2012/01/04    

연재될 내용들이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박정룡 : 2012/01/04    

정말 감사합니다.


민효진 : 2012/01/04    

정말 흥미로운 내용같아요. 심리학적으로 풀어주고 성경 말씀으로 적용해보고..
감사히 잘 읽을께요..민호형제, 동준형제, 현계형제 많이 애써 주세요~~!


이제환 : 2012/01/04    

사유가 깊어지니 참 좋습니다. 내적치유를 구원론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글을 보게 되니 참으로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온전한 내적 치유 (거듭남)" 와 "완전한 내적 치유 (성화)" 라는 개념을 분류한 것이 참 날카롭고 앞으로 연구해내야 할 과제들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더욱 업데이트 된 자료를 보고 싶어요!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


홍성택 : 2012/01/0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여영 : 2012/01/04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다음 글 기대됩니다^^


장지영 : 2012/01/04    

와와!!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연재 순서를 보니 정말 빨리 기다려집니다!!


김진국 : 2012/01/04    

많은 유익이 됩니다.^^


최정숙 : 2012/01/04    

너무 기대가 됩니다. 치유사역 3인방 화이팅! 2011년이 아니고 2012년~~!!


김기호 : 2012/01/04    

거듭난자의 15가지 표징으로 내적치유의 증거를 발견합니다!!
치유의 사역을 선도하는 젊은형제여 끝까지 함께갑시다!!


민동영 : 2012/01/05    

우왓! 강추강추!!ㅋㅋㅋ


김세영 : 2012/01/06    

최고.


이진배 : 2012/01/06    

천국의 온도계로 체크할 때 우리 교회는 지금 몇도일까? ㅎㅎ 너무 궁금해 집니다. 전무후무한 감사교회의 치유사역이 너무 기대됩니다.^^


남성섭 : 2012/01/12    

와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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