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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 1
노병기    2009-08-20 16:54:23   
【†필독!】위대한 거듭남의 필요성

  

당신은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거듭남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반드시 다음 내용을 유의해서 읽으라.

  이 일은 당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아래 『거룩한 구원』 31-49쪽에서 인용)

 

제1장  위대한 거듭남의 필요성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에이든 토저는 현대에 유행하는 구원의 가르침을 인스턴트식 구원이라고 다. 토저의 말을 들어 보자. “오늘날 구원 얻는 일에는 치명적인(deadly) 자동적 특성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나를 크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자동적 특성’입니다. ‘슬롯머신에 100원어치의 믿음을 넣고 손잡이를 당겨 작은 구원의 카드를 꺼내라. 그것을 지갑에 넣고 떠나라!’ 그렇게 하고 나서 그 사람은 ‘그래. 나는 구원을 받았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압니까? ‘나는 100원을 넣었다. 예수를 영접하고 카드에 서명했다.’”1) 

  이것이 오늘날 유행하는 구원받는 길이 아닌가! 이것이 진정 바람직한 현상인가? 놀랍게도 지금은 토저 때보다 이런 식의 구원이 훨씬 많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식 외의 다른 식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어 볼 수 없다. 아니면, 아예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았다고 말해 주는 곳도 많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나? 토저가 말한 것처럼 인스턴트식으로 구원받았는가? 아니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회심을 체험는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을 기억하라.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라고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에 의한 거듭남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성령으로 거듭난 징표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매순간 살아가는가?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당신 속에 성령님께서 실제로 내주하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니며(롬 8:9), 계속 그 상태로 산다면 나중에 지옥에 가고 말 것이다(롬 8:13).

  현대는 거듭남에 대한 가르침이 희미하고 빈약하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거듭남의 복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교도 스티븐 차녹은 요한복음 3장 3~5절 말씀을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보았다. “예수님께서 주신 요한복음 3장 3~5절 말씀은 현세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적인 경건과 내세에 있어서의 모든 행복의 기초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선지자로서,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해 주시는 왕으로서 주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2)


1. 거듭남의 정의


  거듭남이 무엇인가? 거듭남이란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우리 영혼이(엡 2:1) 살리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고(고후 3:18 ; 골 3:10 ; 갈 4:19), 죄악에 물든 부패한 마귀의 성품을 지닌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적인 성품을 지닌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벧후 1:4).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속에, 내가 예수님 속에 있음을, 즉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된다(요 14:20). 당신은 이와 같이 거듭났는가? 

  오늘날은 이와 같은 거듭남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모르는 교인이 많다. 거듭났느냐고 물으면 거듭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거듭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신앙 위인들이 말하는 거듭남의 정의를 들어 보자.

  조지 윗필드는 거듭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듭남”이란 그의 유명한 설교에서 거듭남이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내적 변화를 체험하고, 우리의 도덕적 행동들이 변화된 새로운 본성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3)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윗필드에 있어서 거듭남은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부패한 본성이 깨끗게 되고, 정결케 되고, 전적으로 변화”되고, “우리가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4)이다.

  윗필드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거의(almost)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철저한(altogether)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얻기를 기대한다면 헛된 일5)이라고 하였다. 그는 거듭남이란 기이하고 놀라운 변화라고 다. 그는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고 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기질이나 습관, 행동의 변화가 너무 큰 나머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죄 가운데 지냈던 생활을 잘 알던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유년기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하다가 20년 만에 만나 보고 그 변한 것에 놀라듯이 말입니다.”6)

  거듭남은 체험적인가? 윗필드는 거듭남을 경험적으로 체험해야 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거듭남”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성령에 의한 신생을 경험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대해서 회중 가운데서 너무나 적은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거듭남 혹은 신생의 교리는 대다수의 신앙 고백자들 가운데 좀처럼 고려되지 않고 있으며, 너무나 적은 사람만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7)

  조나단 에드워즈는 거듭남이란 은혜[성령]8)가 “하나님에 의해서 주권적이고, 효과적인 작용에 의하여 주입되고(infused),”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셔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은혜롭고 거룩하게 되는 것”9)이라고 했다. 그는 거듭남의 변화는 ‘놀라운 변화’라고 했다. “이렇게 회심할 때 영안이 열리므로 일어나는 변화는, 맹인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살다가 갑자기 눈이 떠져 밝은 대낮에 사물들을 보게 된 사람이 겪은 변화보다도 모든 면에서 훨씬 더 크고 놀라울 것입니다.”10)

  에드워즈는 “회심 또는 중생의 교리는 기독교의 가장 위대하고 기본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라고 다. “이것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믿어야만 하는 무한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회심 또는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많은 헐뜯음과 반대를 받아 왔으며,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의심하기 쉬운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11)

  존 웨슬리도 거듭남은 매우 큰 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큰 내적인 변화, 성령의 역사로써 영혼 속에 이루어지는 변화, 우리의 존재 양식 전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에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12)

  찰스 피니에 의하면, “거듭남이란 도덕적 성품의 전적인 현재적 변화”를 말한다. 즉 “전적인 이기심에서 전적인 거룩함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13)

  청교도의 왕자라 불리는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 마음속에 비추어진 구원하는 영적인 빛에 의하여 우리 마음속의 타고난 무지와 어둠과 소경됨이 제거되고, 영적인 생명과 의의 새로운 원리가 우리에게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의지의 부패와 완고함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 속에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정서의 무질서함과 반역이 치유되는 것입니다.”14)

  위대한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회심은 “한두 가지의 변화, 혹은 스무 가지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 전체의 변화이며, 삶의 목표와 대화의 성향의 변화”라고 하였다.15)

  윗필드를 회개시킨 유명한 책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저술한 헨리 스쿠걸은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과 영혼의 연합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영혼에 하나님의 그 형상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신앙이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앙의 본질, 그것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습니다.”16) 

  이상의 말을 종합해 보면 거듭남이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짐으로 우리 영혼 속에 일어나는 내면의 철저한 변화’를 말한다. 거듭날 때 ‘우리의 이해력과 정서와 의지 전부가 놀랍게 변화’된다. 이것은 복음주의 각성 운동 설교자들과 청교도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내용이었다.


2. 거듭남의 필요성


  왜 인간은 모두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가?

  ⑴ 인간의 영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다’(엡 2:1)고 말씀한다. 왜 지금 인간의 영혼이 죽어 있는가? 그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 때문이다(창 2:16~17 ; 3:1~24).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따라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따라 그 영이 죽어 버렸다.

  웨슬리의 말을 들어 보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그날 인간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습니다. 모든 죽음 가운데서도 가장 두려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해야만 그의 영적인 생명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는 순간 그 육신은 죽게 되는 것처럼, 영혼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순간 죽게 됩니다. ……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 둘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둘이 없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거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마귀의 형상인 교만과 아집에 빠지게 되었고, 멸망할 짐승의 형상인 관능적 욕구와 정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17)

  이와 같이 아담 이후로 출생하는 모든 인간은 영이 죽은 채로 죄악 중에 출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살려 주셔야 인간의 영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 

  오웬은 인간의 영혼은 죽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명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영적인 생명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자 하는 그 어떤 활동적인 성향도 없습니다. 그것은 죽은 시체가 자연적 생명을 향한 어떤 활동적인 성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능력에 의하여 생명의 원리가 밖에서부터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나사로의 죽은 몸속에 그의 영이 들어갈 때 살아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로는 생명을 향한 최소한의 활동적인 성향이나 경향성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18)

  ⑵ 인간은 모두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롬 3:10~12 ; 시 51:5). 영이 죽은 인간은 모두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도 사랑도 의지도 다 죽어 있다. 지, 정, 의가 심히 부패해서 죄악에 종 노릇 하게 되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생각은 허망한 것을 쫓아가고, 마음은 탐욕과 시기와 미움의 지배를 받으며, 의지는 선을 행하기에는 더디며 악을 행하기에 빠른 자가 되었다.

  로마서 1장 28~32절에서는 거듭나기 전의 사람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온갖 죄악 속에 살아간다. 이것은 그 본성이 부패했다는 증거다.

 성경은 부패한 본성을 따라 불의하게 사는 죄인은 장차 임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을 보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음란 죄, 우상 숭배 죄, 도적질, 탐람하는 죄, 술 취하는 죄 등을 짓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분명히 성경은 말씀한다. 참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탐람하는 자’란 어떤 자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세상의 탐심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요일 2:15~16).

  누구든지 세상적인 탐욕, 즉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속물로 살면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6절을 보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이 구절을 보면, 탐하는 자는 곧 우상 숭배자라고 하셨다. 또 골로새서 3장 5절에도 보면,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왜 탐심이 우상 숭배인가? 그것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요, 영적인 간음이다(약 4:4). 누구든지 이러한 세상의 탐심을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부패한 본성에 따라 불의하게 사는 인간은 반드시 지옥에 간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차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부패한 본성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본성을 반드시 구비해야 하는 것입니다.”19)

  오웬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먼저 우리들의 본성을 씻고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돌 같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시고 살 같은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법을 우리들의 마음에 새기시는 것이고, 우리들 속에 그의 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은혜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의 율례를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준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을 개혁하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거룩한 순종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20)

  ⑶ 거룩함이 없다면, 누구도 장차 임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장차 이 땅에 임할 영원한 천국은 죄인들이 가는 곳이 아니고, 이 땅에서 죄에서 구속받고 거룩하게 산 자들만 들어가게 될 것이다(계 14:4~5 ; 7:13~14).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웨슬리의 말을 들어 보자.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며, 영광 속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신생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 왜냐하면 다시 태어남이 없이는 아무도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21)

  어느 정도 변화된 삶을 살아야 거룩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산상수훈에 그 대답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천국 백성들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수준을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예수님께서 신약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수준은 매우 높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나은 의는 어떤 수준인가? 서기관들은 구약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쳤던 사람들로서 당시 율법 해석의 권위자들이었다. 성경에서는 다른 말로 ‘율법사, 교법사’로도 호칭되어 나온다. 오늘날로 보면 전문적 신학자들에 해당된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키는 데 남다른 열심을 가졌던 종교 집단으로서 예수님 당시 약 6천 명가량 있었다. 바리새 운동은 말하자면 하나의 중산층 평신도들의 경건 운동으로서, 모세 율법, 특히 레위기의 거룩과 정결의 법들을 철저히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음식을 가리며, 불결한 죄인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주된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적어도 오늘날 주일 예배만 드리는 소위 주일 신자들(Sunday Christian)이나 기타 대부분 평균적 교인들보다는 훨씬 열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로 말미암아 예수님께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상당한 종교적 열심이 있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열심이 대단하여 철저한 안식일 준수,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전도도 많이 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전문성과 열심으로 인해 백성들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의존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신랄하게 그들을 질책하셨다. 외적 행위와 달리 그들의 마음은 온갖 ‘불법과 외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마 23:28).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근본적인 비난은 그들의 종교가 마음의 종교가 아니라 전적으로 외적이요, 형식적이라는 것”이었다.22) 오늘날도 외적인 종교적 활동은 메우 얄심히 하지만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신자들이 많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들보다 더 나은 의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마태복음 5장 21~48절에서 약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첫째,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짓 없는 순수한 형제 사랑을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 21~22절을 보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신약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에 대하여 거짓 없는,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존중하고 살아야 한다. 율법은 살인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으나,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여도 안 되고 욕하여도 안 된다고 하셨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다. 이러한 거짓 없는 사랑은 오직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다. 당신이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요일 3:14).

  둘째,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성에 대하여 부정한 마음을 버리고,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을 보라.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성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그것조차 뛰어넘게 하신다. 인간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이것이 어렵지만, 성령님의 지배 아래 살면 이것이 쉽다(약 3:17). 그러므로 거룩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항상 진실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을 보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율법에는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을 버리고 항상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말하라는 뜻이다.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매사에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나, 말하는 것에 있어서나,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는 자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진실의 영이신 성령으로 거룩하게 거듭나야 이렇게 살 수 있다(엡 5:9).

  넷째,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내게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즉 복수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마태복음 5장 38~42절을 보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율법은 동일 보복률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그보다 나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절대 누구에게든 복수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자일지라도 복수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복수심 대신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마 5:7 ; 약 3:17).

  다섯째, 장차 천국에 들어가려면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43~44절을 보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적 수준으로는 이해가 안 되며, 헤아릴 수 없이 높은 수준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사랑의 영이신 성령을 받으면 이것이 저절로 된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요구하셨다면 예수님은 자기는 실천하지도 않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마 23:3~4)처럼 무자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몸소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눅 23:34).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삶을 살기가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그렇게 살 수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질문 : 어떤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는 것을 단순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를 지칭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 말씀들을 지키는 것과 구원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들은 단지 우리의 부족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답변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7절부터 48절까지 말씀하신 의도가 바로 그러한 자들을 반박하시기 위함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앞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율법적 성취를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지, 더 안일한 삶의 방식을 허용하시러 오신 것이 아니다. 이것을 더욱 분명히 확정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마 7:24~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산상수훈은 실천하라고 주신 것이지, 감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의보혈로 죄 사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능히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는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 선지자는 산상 설교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해 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산상 설교를 실천하지 않고 이 설교를 듣기만 한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23) 윗필드성령을 받으면 원수까지 사랑하게 된다고 가르쳤다. “성령을 받았다는 다섯 번째 성경적 표지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의무는 너무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합니다. 심지어 세리와 죄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남과 다른 특별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에게는 어려운 의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 자는 누구든지 그것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며 쉽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24)

  (4)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하나님 나라의 참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요 1:12~13).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이었다(눅 4:43~44 ; 마 12:28). 이 하나님 나라는 오순절 날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다(행 2:1~36). 우리가 성령을 받음으로 지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요 3:3, 5) 우리 심령 속에 천국이 시작되는 것이다(롬 14:17).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지금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내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그 마음에 임한 사람만(심령 천국)이 장차 임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영원 천국).


3. 거듭남의 방법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나는가?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⑴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구원의 말씀’을 믿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정결케 됨’을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을 믿고, 우리 죄를 뉘우치고 철저히 회개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성경 여러 곳에 보면, 물은 ‘말씀’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구원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회개함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 여러 구절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2~23).

  웨슬리 듀웰(Wesley Duewe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한복음 3장 5절이나 디도서 3장 5절은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깨끗게 하시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끗게 되고 변화되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말씀을 적용하심으로만 일어납니다(요 15:3 ; 17:17 ; 엡 5:26).”2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3~4).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따랐다. 이것으로 그들은 깨끗함을 받았던 것이다. 즉 물로 거듭난 것이다. 제자들은 물로 씻음은 받았으나, 성령의 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으나, 신적인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신 것이다(요 20:22).

  ⑵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믿고 철저히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즉, 성령 내주의 은혜를 주신다. 이때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된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세례다.

  하나님께서는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엡 1:13 ; 갈 3:13~14). 요한복음 7장 37~39절을 보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또, 사도행전 2장 38~39절을 보라.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 받은 자’에게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셨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내주하실 때,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 


4. 거듭남의 결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성령의 내주하심을 깨닫게 된다(요 7:37~39 ; 14:20 등). 윗필드는 모든 신자가 성령의 내주하심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다. 그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부인하는 설교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된 인도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지옥의 저주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소위 여러분이 갖고 있다고 하는) 모든 학식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서 피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고위 성직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케 해 줄 수 없습니다. 잠시 후면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저와 여러분은 만날 것입니다. 거기서 위대한 목자요, 영혼의 감독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가 거짓 선지자인지를 확정하실 것입니다. 또 누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인지를 밝히실 것입니다. 지금 성령을 받고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는지, 아니면 그러한 가르침을 마귀의 교리라고 소리치며 대적하는 자들이 주님의 인정을 받을 것인지는 그날에 판결이 날 것입니다.”26)

  거듭난 사람은 성령님의 내주를 느낄 뿐만 아니라, 본성이 거룩하게 되는 근본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벧후 1:4 ; 고전 6:11 ; 살후 2:13 ; 딛 3:3~5 등).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거듭나게 되면 죄악을 즐기고 세상 것을 즐기던 육적이던 본성이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좋아하는 영적인 성품으로 바뀐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그 속에 사랑이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더는 이기적인 마음 상태로 살지 않게 된다. 그 대신 이타적인 사랑의 영을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갈 5:22~23 ; 요일 3:10)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살게 된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은 이렇게 거듭났는가?





  






kimbogeong : 2012/03/05    

Thank You Lord for giving me Your Grace.
You are the Lord my God who brought me out of Egypt.


조운 : 2012/06/25    

물로 거듭난다는 뜻이 제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뜻이군요 자주와서 배워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이여진 : 2016/03/03    

아멘!!


정은경 : 2022/01/19    

아멘. 감사합니다~🌸


이시형 : 2022/03/05    

아멘! 주님, 제게 주님께서 최고로 원하시는 때에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성령으로
제 마음속에 불같이 전무후무하게 충만히 임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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